미국에서 지주회사의 출현 배경
(1) 경쟁회피를 위한 다양한 기업연합의 출현
미국에서 지주회사는 자본주의 경제발전 과정의 중요 대목마다 매우 중요한 법/정책 이슈로 등장하여 온 지배구조였다고 할 수 있음. 미국에서는 남북전쟁 발발 이후 산업화의 급격한 진행에 따라 대기업들이 대거 등장하게 됨. 하지만 1870년대 들어 불황과 더불어 치열한 요금경쟁이 벌어지면서 대기업들 사이에는 경쟁구도를 회피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나타났는데 그 회피시도의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 여러 형태의 기업 연합체들이었음.
당시 미국에서 산업 규모가 가장 컸었고 운임 경쟁이 심했던 분야가 철도 산업이었는데, 철도 분야에서 나타난 초기 기업연합 형태는 소위 풀(pool) 방식이었음. 신사협정과 기업결합의 중간 형태라 할 수 있는 이 풀은 그 조직에 가입한 기업들의 생산을 하나로 통합한 후 일정 비율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는 것을 골자로 운영되던 연합체라 할 수 있음. 수익배분 이외에도 풀 체제 하에서는 소속 기업들이 공동으로 가격책정, 생산할당, 시장분할 등을 수행키로 하는 내용의 카르텔과 유사한 협정을 체결하기도 하였음.
하지만 풀은 참여기업 간의 결속력이 비교적 약한 연합체(loose combination)이기도 해서 참여기업들이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견지함에 따라 협정파기가 빈번히 발생했음. 풀에서 행해지는 관행들이 보통법에 따라 위법한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았음.
이에 따라 그 대안으로서 풀 보다 강력하면서도 독점적인 연합체(tight combination) 형태인 트러스트(Trust) 방식이 등장했음. 영국의 신탁제도에 기원을 둔 이 트러스트 체제하에서는 참여 기업의 대주주가 자신 소유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수탁회사에 인도하고 그 대신 트러스트 증서(trust certification)을 교부 받아 수익을 분배받도록 되어 있었음. 트러스트는 당시 미국 내 최대기업이었던 스탠다드오일(Standard Oil Co.)에 의해 1879년에 채택되면서 미국의 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음.
트러스트 하에서 기업집단의 자본과 지배는 분리되고 수탁자는 경영에 대한 지배권을 보유하게 되어 참여하고 있는 시장에서 매우 강력한 지위를 점하게 됨. 반면에 산업 및 시장집중화로 인해 소비자의 이익은 크게 저하되었고 철도와 석유 트러스트간의 제휴에 따라 노동자와 농민의 반감이 극대화되면서 미국 전반에 반트러스트 운동 및 입법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음. 이에 따라 트러스트에 의한 독점과 거래제한가 common law에 따라 금지되기 시작하였고, 1890년에 셔먼법이 제정되면서 트러스트는 규제의 핵심표적으로 지목되었음.
그 결과 스탠다드 오일 트러스트(1892)와 에디스톤 강철(Addyston Pipe & Steel Co.) 트러스트(1898)가 위법으로서 금지되면서 트러스트는 크게 위축되었고 이를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연합으로서 지주회사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음.
(2) 트러스트의 대안으로서 지주회사의 등장
1888년 이전에 미국에서는 회사가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거나 보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의 설립이 금지되었음. 따라서 법령에 의한 허가 없이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으며, 경쟁을 제한할 목적으로 경쟁회사의 주식을 취득하는 것 또한 공공질서에 반하는 행위로서 무효화되었음.
하지만 연방과는 달리 일부 주의 특별법에 의해서는 주식의 보유가 허용되기도 하였음. 그 결과 주에 따라서는 지주회사의 설립이 가능했는데, 실제로 1832년에 볼티모어-오하이오 철도회사(Baltimore and Ohio Railroad)가 지주회사 형태로 최초로 설립되었음. 동 회사는 다른 철도회사의 주식을 인수한 지주회사로서 사업활동을 영위하면서 다른 회사의 주식을 소유·지배했던 사업지주회사이었다.
이후 1870년대에 들어서는 펜실베니아철도회사, 그리고 가스회사(1870)나 전기, 전력회사(1880) 등 공익사업 분야에서 지주회사들이 설립되었음.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주법은 점차 늘어나게 되었음. 예컨대 뉴저지(New Jersey) 주에서 지주회사법(Holding Company Act)이 제정(1888)되었고 이후 Delaware, Maine, West Virginia, New York 등의 대부분 주들이 회사법을 개정하여 회사의 주식 소유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였음. 또한 법인의 주식교환에 의한 기업합병이 가능하게 되면서 미국 내에서 지주회사의 설립 풍조은 더욱 활성화되었음.
한편 당시 독점금지법의 표적이 되었던 트러스트형태의 기업집단들은, 활성화되기 시작한 지주회사를 트러스트의 대안 내지 규제의 회피 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음. 그에 따라 트러스트 보유 주식을 지주회사에 이전하는 방식으로 기업집단 및 독점의 연장을 꾀하게 되었음. 1899년 사업지주회사로 설립된 스탠다드오일 뉴저지가 그에 관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음.
1900년대 들어서면서 지주회사 형태의 기업연합은 더욱 보편화되었음. 미국 내 기업간 결합의 대부분은 지주회사 조직에 의한 것이었으며, 1904년에는 미국 내 제조업 부문 기업의 25%를 지주회사가 지배했고, 1910년대에는 제조업의 상위 100개사중 31개가 지주회사이었음. 이후 1920~1930년대 들어 미국의 주요산업에 속하는 기업 중 70% 이상이 사업지주회사에 속할 만큼 확산되었으며, 이재형, “지주회사 관련 정책에 대한 비판적 접근”, 「기업지배구조연구」 vol.8 (2003 가을호), 101면
1960년대 감소세를 나타내지 전까지 미국의 기업집단 형태를 대표하는 지배구조로 보편화되었음.
한편 미국 독점금지법적 관점에서 볼 때 지주회사는 트러스트의 대안으로 등장한 만큼 이에 대해 셔먼법 등 독점금지법을 적용할 것인지가 줄곧 논의되어 왔음. 이동원, 「지주회사」, 세창출판사, (2001), 57~58면.
미국 법원은 집중되는 독점자본을 염려하여 지주회사를 분할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경영의 견고한 결합으로써 지주회사는 보편화되고 발전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