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용어 및 법률체계상의 혼란
과거 보험거래에서는 주로 약관설명의무가 문제되었고, 이는 보험계약법의 법원에서 살펴보았다. 보험자가 약관설명의무를 위반하면 원칙적으로 계약설에 따라 계약의 내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판례에 의하여 발전된 고객보호의무의 법리와 투자상품에서의 미국의 설명의무 등의 이론이 들어왔고, 그것이 보험거래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규정함에 의하여, 용어 사용 자체에서도 어려움이 생겨난다.
예컨대 설명의무라고 하면 그것이 약관설명의무를 일컫는 것인지, 또는 고객보호 차원에서의 보험자의 설명의무를 일컫는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다. 양자의 효과 자체도 다르고 그 설명의 대상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하에 그 비교를 하여 본다.
(2) 보험자의 설명의무와 약관설명의무와의 관계
① 약관설명의무와의 비교
지금까지는 보험거래에서의 설명의무는 약관설명의무가 많이 논의되어져 왔다. 사회경제적으로 강자의 지위를 점하는 보험자 측에서 일방적으로 작성한 약관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되는 경우 소비자에게 심각한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이다. 약관설명의무와 보험자의 설명의무와의 관계를 본다.
양자는 그 입법도 상이하고, 발전되어 온 양태도 전혀 다르다. 하지만 보험자의 고객에 대한 정보제공 의무에 기초한 것으로서 유사한 점도 있다. 약관설명의무(전자)와 보험자의 설명의무(후자)의 유사한 점들은 다음이다.
첫째, 거래당사자 사이의 정보비대칭성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므로,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가동일하다. 계약의 체결 과정에서 무형의 상품에 대하여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유도하고 그 상품을 이해한 이후 구입하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상품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약관(전자) 또는 계약(후자)의 모든 사항이 아니라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 설명하도록 하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② 약관설명의무와의 차이점
하지만 양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첫째, 설명의무의 대상에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약관의 중요한 사항을 설명하여야 한다. 그러나 후자는 약관의 내용이 아니라 하더라도 당해 상품의 선택에 있어 중요한 사항을 설명하여야 한다. 최근 KIKO 사건에서 제공된 상품이 약관에 의한 것이 아님에도 설명의무가 중요한 쟁점으로 되고 있음은 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둘째, 위반의 효과로써, 전자를 위반한 경우에는 계약의 내용이 되지 않음에 반하여, 후자를 위반한 경우 손해배상책임이 논하여진다.
셋째, 전자가 인정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비자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약관에 정하여진 중요한 사항이 계약 내용으로 되어 소비자가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데 그 근거가 있음에 반하여, 후자는 과거 주로 투자상품의 영역에서 자기책임원칙과 관련한 전제로서 발달되어 왔다.
넷째, 전자는 약관에 대한 설명의무이지만, 후자는 고객에게 거래의 내용 및 투자의 위험성
에 대하여 ·판단을 잘못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의무를 지고 이를 위해 금융기관은 고객에 대하여 필요한 조언·설명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전자는 계약의 편입과 관련하여 계약의 성립시에 문제되는 것이나, 후자는 계약의 성립시 뿐 아니라 존속시 등에도 문제된다.
여섯째, 예외의 경우로서 전자에 대하여는 판례가 법령에 규정된 의무, 고객이나 그 대리인이 약관의 내용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경우, 그리고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당사자가 알고 있다고 예상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하여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후자를 객관적‧보편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예외를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고객의 주관적 사정과는 무관하게 금융기관은 그 상품에 대한 객관적 설명의무를 다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타인의 사망보험계약에서 계약체결시 피보험자의 서면에 의한 동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아니한 경우 계약의 내용으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손해배상책임을 논하는 판례는 이러한 점에서 수긍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양자의 의무 모두 정보비대칭성으로 인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인 점은 같으나, 약관설명의무는 그 설명의무의 대상이 약관임에 반하여 보험자의 설명의무는 자기책임 원칙의 전제로서 발전된 것으로서 그 설명의 대상이 약관에 국한되지 아니한다.
③ 미국의 합리적기대원칙과 규범설
금융기관의 설명의무는 미국법상의 증권거래에서 발달된 것으로서 미국에서는 약관의 구속력이 기본적으로 합리적 기대원칙에 의한다. 이는 우리의 법제와 달라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일단 계약의 내용이 되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단지 소비자의 합리적 기대와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면 계약의 내용이 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즉 미국은 약관의 구속력 등에서 우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설명의무가 우리나라에서 판례를 통하여 일부 독자적인 발전을 하였더라도 계약의 내용과 관련한 중요 쟁점인 약관설명의무와는 일부 조화롭지 못한 점이 있어, 향후 명확한 법리의 정립이 요구된다.
약관설명의무에서 판례가 그 예외를 점차 늘려가는 추세이고 보면, 보험자의 설명의무가 앞으로 보다 중요한 역할을 떠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금융기관의 설명의무가 판례나 입법상 별도의 의무로서 도입되는 상황이고 보면 양자의 보완적이면서도 조화로운 해석이 기대된다.
(3) 보험자의 설명의무와 적합성원칙
① 별개의 독립된 의무
금융기관의 설명의무와 적합성원칙이라는 양자의 관계에 대하여는 적합성원칙은 설명의무의 일부라는 견해, 적합성원칙과 설명의무를 별개의 독립된 의무로 인정하면서도 적합성 원칙에 위반하더라도 설명하여 이해할 수 있으면 된다고 하여 설명의무를 우위에 두는 견해 등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의 일반적 견해는 양자는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 서로 다른 것으로 보는 듯하고, 이것이 입법태도로도 읽힌다. 보험자의 설명의무는 객관적 판단기준에 의한 것으로 보험자가 상품에 대한 객관적 설명을 충실히 다할 것을 요구하는 측면에서의 의무이고, 적합성원칙은 고객의 능력이나 경험 등에 기초한 주관적인 것이다.
② 차이점
첫째, 설명의무의 이행에 있어서는 그 설명의 대상이 되는 사항과 정도가 문제됨에 반하여, 적합성의 원칙에서는 당해 고객의 목적을 파악하고 이에 적합한 상품을 제공하였는지 여부가 문제되고, 양자는 각자 기능을 달리하는 것으로 본다. 즉 설명의무는 객관적‧보편적 의무로서, 적합성원칙은 주관적‧개별적 의무로서의 성질을 지닌다.
둘째, 적합성원칙은 개인의 능력이나 경험 등에 비추어 그 보험상품이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고 설명의무는 당해 거래에 수반하는 위험성에 관하여 정당한 인식을 형성하기에 족한 정보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한다.
셋째, 설명의무는 자기결정에 대하여 보조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고, 반면 적합성원칙은 후견적인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설명의무는 적절한 정보가 제공되면 그 고객의 행위에 대해서 자기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함에 반해서, 적합성원칙은 아무리 설명을 하여도 이해할 적성이 없거나, 그 거래에 실패하면 위험부담이 너무 큰 경우에는 애초에 권유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적합성의 원칙에 따르면 정보개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넷째, 적합성의 원칙은 고객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여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을 권유해 준다는 것이고, 설명의무란 자기가 상품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정보를 기초로 하여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객에 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다섯째, 적합성원칙은 권유단계에서만 문제되는 것이나, 설명의무는 권유단계뿐만 아니라 전 계약기간을 걸쳐서 보험자가 부담하는 의무이다.